진문공이 면산을 불태우던 날이 바로 청명절이었다. 구슬퍼진 진문공은 전국에 영을 내려 불을 지피거나 밥짖는 연기를 내지 못하게 하고 청명절을 한식절로 부르게 했다. 후세 사람들은 개자추를 기리어 청명이 되면 자발적으로 모두 불을 지피지 않고 한달 동안 냉식 을 하였는데 후에는 점차 3일간으로 줄어들었다. 한식절은 이렇게 오늘까지 유전되어 왔다. 이듬해 청명절이 되자 진문공은 여러 신하들을 이끌고 면산기슭의 개묘 에 나가 개자추에게 제를 지내었고 불에 탔던 수풀에서 산중턱의 버드나무가 죽지 않고 되살아난 것을 발견했다. 진문공은 버드나무를 개자추가 전화한 것으로 간주하고 버드나무에 청명류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는 또 진 나라 백성들에게 집집마다 문위에 바들가지를 걸어놓고 성묘할 때 버드나무를 심으며 면산에 올라가 답청함으로써 그리운 정을 토로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한식 전날을 취숙일로 정하고 사람들에게 증병을 많이 만들게 하였는데 그것을 자추증병이라고 불렀다. 어떤 집에서는 밀가루와 대추소로 제비모양의 떡(삼각함병)을 만들어 그것을 버들가지에 꿰어 문에다 걸어놓고 말리었는데 자추연이라고 불렀다. 해마다 사람들은 청명이 되면 집이나 마을 뒤에다 버들을 심고 청년 남녀들은 산에 올라가 산놀이를 하면서 머리에 버들가지로 만든 모자나 따발을 썼다. 따라서 당시에는 청명에 버들을 쓰지 않으면 홍안도 이내 백발이 된다.는 민요까지 생겨났다. 오늘날 청명절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연히 한식과 답청을 떠올리게 된다. 청명절의 한식풍속은 이미 별로 숭배되지 않고 있으나 청명에 답청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청명절은 한식절 외에 답청일로 불려지기도 한다. 개자추의 이야기는 생동하고도 감동적이어서 2,000여 년이나 전해져 오고 있다. 개자추가 공을 세우고도 녹을 추구하지 않는 고상한 품격은 이미 중국인들의 귀중한 정신문화의 재부로 되었다. 웬핑 시 동쪽 교외에 자리한 고찰 석고사 는 대전에 개자추와 노모의 전신좌상을 조각해놓았고 양쪽 벽에는 24세트의 개자추 이야기를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해마다 청명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석고사에 와서 개자추를 추모한다. 현재 허우마 시에 신축한 진문공궁 및 위 현 장산의 진국성에는 모두 중이의 주유열국ㆍ개자추의 할고제군ㆍ불타는 면산 등 경관이 조각되어 있으며 CCTV에서 방영한 연속극 <동주열국>에도 불타는 면산이 특집으로 취급되어 있다. 제슈 시 민영 기업가이며 산시 성 싼쟈 석탄화학유한공사 이사장 겸 총경리인 옌지잉 선생은 1995년 10월 이래 면산풍경구 개발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여 많은 고건물을 보수하고 운봉사 서쪽 작은 뜨락의 개추전을 개건하였으며 용척령 에다 9.9m 높이의 개자추 모자 조각상을 세웠다. 그리고 아이하오 비탈에다 제공령(개공사 석굴)에 이르는 1,800여 개의 등산 돌층계를 부설하고 거형의 석굴안에다 높이 12m나 되는 개자추와 그의 노모 및 해장 등 3기의 조각상을 수립하였으며 석굴의 암벽에다는 개자추의 이야기와 한식 문화에 관한 내용의 양각을 정성껏 제작해 놓았다. 여행객들에 의해 천하 제1 석굴사로 칭송되는 개공사 석굴은 개자추의 높은 인격과 굳은 절개를 명기 하였으며 또한 개자 한식 청명문화의 정수를 구현하였다. 2,600여 년 이래 면산에 올라 한식 청명절을 지내며 개자추를 참배하는 사람은 갈수록 많아지고 그를 위한 분향은 내내 끊임이 없다. 한식 청명절의 발원지인 제시우 면산은 10여 년의 개발과 건설을 통해 한식 및 충효문화가 이미 면산풍경구의 독특한 문화유산으로 부상했다. 개공사 석굴은 이미 수천 수만 사람들이 찾아와 개자추를 추모하고 한식일에 등산과 답청을 하며 개자의 충효문화를 체험하는 관광휴양지로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