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 사람은 한인 성불의 제1인자인 전지초 이다. 다른 명산(ɽ)은 보살의 도량이지만 면산은 자고로 공왕불 의 도량이었다. 불전의 기록에 따르면 공왕불은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의 공동 조사이며 따라서 포복사는 정과 선의 같은 조사이며 선과 정을 동시에 수련하는 천년 고찰이다. 전설에 의하면 전지초는 공왕불이 탁생한 활불이라고 한다. 그는 성이 전()씨요 원적은 산시 풍익 이며 후에 산시 위츠 의 웬와 로 이주했다. 그가 27살이 되던 해에 백성들을 위해 상주했다가 박해를 받게 되자 가출을 하여 타이웬 몽산 개화사의 고승 혜찬(혜찬)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정토정의 다른 한 대사 도작 과 한 스승을 모셨다. 후에 그는 허베이 딩저우()에 파견되어 임제종의 창립에 참여했다. 무덕 원년에는 제자 20여 명을 거느리고 창안 에 가서 개국대전에 참여하고 당 고종의 신선을 대하듯 한 특별 예우를 받았다. 무덕 5년에는 여러 곳을 떠돌아 면산의 포복사에 이르렀다. 정관 14년 창안에 큰 가물이 들어 당 태종이 면산에 가서 기우제를 지냈더니 과연 하늘이 단비를 내렸다. 이듬해 봄이 되어 당태종은 활불에게 사의를 표하러 친히 면산에 왔지만 마침 지초가 원적을 한 뒤었다. 태종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이번 길이 공망불 이 될 줄이야! 순간 포복사 상공에 공망고불 4개의 금빛 글자가 나타났으므로 당태종은 지초를 공왕불로 칙봉하고 운봉사를 건조케 했다. 지초의 포소진용은 현재 포복사 석불전에 모셔져 있다. 전지초가 면산에서 활불이 된 이야기 및 그 영험함에 관한 이야기는 역대의 <펀저우푸지>ㆍ<제슈현지>, 그리고 면산기슭의 대송회란사비와 포복사 공왕전 앞 명 대 정덕년에 보수한 포복사 공왕전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 면산에는 또 전지초가 위험을 당했을 때 토끼와 사슴이 다리로 변해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토끼다리와 사슴다리가 있고 면산의 용모 가 지초를 시탐하기 위해 일부러 바둑을 두어 산을 져주었다는 기반동이 있으며 다섯 용이 불복하여 법술을 부려 홍수로 포복사를 무너뜨리려 하자 지초가 왼손으로 떠받치면서 남긴 부처님 손자국이 있고 지초가 다섯 용을 감화시킨 뒤에 생긴 오룡송ㆍ오룡봉ㆍ오룡골짜기 등 경관이 있다. 보다 기이한 것은 당태종이 활불을 만나 사의를 표하려 했던 데서부터 유전되어 온 민속활동 포복암 현공환원괘령이다. 그것은 신기할 정도로 영험할 뿐만 아니라 장면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장관을 이루어 이른바 중화의 절기로 불리며 면산의 자연경관, 민속활동과 인문이야기의 교묘한 결합을 구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