กฎ한식절กฏ이라고 하면 아마 일부 중국의 전통 명절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กฎ청명절กฏ이라고 하면 심지어 외국인들까지도 이는 중국인들이 조상제를 지내는 날임을 알고 있다. 기실 중국에서는 고대에 이 두 명절이 하나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청명절에 성묘와 조상제 및 등산과 답청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한식 문화의 기타 내용, 심지어 한식절이란 명칭마저도 잘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한식 청명절은 옛날 진문공 이 กฎ공을 세우고도 녹을 따지지 않는กฏ 현신 개자추 를 기념하여 설정한 명절이며 중국에서 영향력이 매우 크고 오래된 전통 명절의 하나이다. 한식절은 특이한 냉식 습속으로 인해 고금의 국내외 학자들의 커다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불을 지피지 않고 한식을 하는 생활방식을 선택하게 된 것인가? 한식은 일종 낡은 풍속으로 기간이 동지 이후의 105일 동안이었으므로 กฎ백공오절กฏ이라고도 한다. 이 풍속은 춘추 시대 진문공 의 충신 개자추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이미 2,6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동한 시대의 한식풍속은 개휴 및 면산에서 멀지않은 태원 군에서 성행하였고 한식문화 및 개자추의 이야기는 민간에 깊이 침투되어 대대로 전해져 오고 있다. 개자추는 진 나라 공자 중이 를 따라 19년 동안 국외에 망명하였고 자기의 살을 베어 중이에게 먹임으로써 그의 목숨을 살렸다. 중이가 마침내 진나라로 돌아와 군주(즉 진문공)가 된 후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자 개자추는 녹을 피해 고향인 하 현으로 돌아갔다. 기원전 635년 초봄 개자추는 또 노모를 모시고 개휴(정양현)의 소송곡 촌 외가집에 가서 은거했다. 그것을 안 진문공은 이웃이었던 해장 을 길잡이로 내세워 개자추를 찾아 개휴 로 갔다. 개자추는 봉록을 피해 또다시 노모를 업고 면산의 바위 굴속에 숨어 누추한 옷과 찬 음식으로 살아갔다. 개자추를 강요하여 자기를 보좌케 할 생각으로 진문공은 여러 대신들을 이끌고 면산으로 나아갔다. 사람을 파견하여 사처로 돌아다니며 소리쳐 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한 신하가 진문공에게 아뢰었다. กฐ개자추는 효자이오니 삼 면에 불을 지르고 한 면을 남겨 놓으면 그는 틀림없이 어미를 업고 나올 것이옵니다.กฑ 그러자 간신인 호언 과 조쇠 는 사면에다 불을 질렀다. 때마침 봄바람이 불어 불길은 갈수록 크게 번져 꼬박 사흘이나 타번지며 개자추가 나올길을 막아버렸다. 진문공이 재차 대신들을 파견하여 찾아보게 했더니 누군가 바위 굴에서 낡은 멍석 하나를 발견했다. 진문공이 그것을 받아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멍석에 กฎ소신은 아무런 봉록도 원하지 않사오며 오로지 주군께서 백성들을 굽어살피시어 청명한 군주가 되시길 바랄 뿐이옵니다.กฑ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진문공은 보고나서 매우 비통하였고 후회막급이었다. 그는 이 충과 효를 겸비한 현신을 기념하기 위해 영을 내려 면산 을 개산(ฝ้ษฝ)이라 개칭하고 정양 현을 개휴 현으로 개칭했다. 그리고는 산에다 불을 지른 날을 กฎ한식절กฏ로 정하고 전국에 영을 내려 사흘간 불을 짚이거나 밥을 짓지 못하게 하고 찬밥을 먹게 했다. 이는 역사상 가장 먼저 내놓은 한식절에 관한 기원설로서 이미 면산의 독특한 문화유산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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